2009.09
주로 식당에서 흔히 보이는 성경구절이 있으니,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약속과 다짐이다. 시작이 미약한 것까지는 맞는데 창대한 끝은 본 적이 없는지라 잘 와닿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런 희망과 믿음을 갖고 살지 않으면 한 발을 내딛는 것도 사실 힘들다.
사람이란 게 워낙 불완전하고 불균형한 존재라, 그 평형을 맞추느라 이리저리 부대끼고 의지도하고 손을 잡지 않으면 고독하기 마련이다. 안정된 삶을 원하면서도 모험을 동경하고, 일탈을 꿈꾸면서도 돌아올 곳을 마련해 놓는다. 이러한 인간의 존재적 가치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방황이 이어질 뿐이다. 스스로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여러 불균형한 존재를 끌어 안아 보완해 가며 사는 것이 사람이다.
여러 불균형한 존재를 끌어 안아 보완해가며 사는 것이 사람이다
놀이터엔 약방의 감초처럼 항상 시소가 놓여있다. 무언가가 그 위에 올라있지 않으면 시소는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이는 그 위에 꿈과 희망을 올려놓고, 또 누구는 그 위에 돈과 명예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 시소의 끝은 다른 시소와 연결되어 있어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때문에 일탈이 생기고, 편이 갈라지고, 그룹이 생긴다. 시소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똑같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모두 다르고,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니 항상 느끼고 있지만,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내 두 팔과 다리를 인지하고 나면, 뇌의 역할과 마음의 역할은 대체 어디 있는지, 원래 있기는 했는지 의문이 든다. 그냥 그대로 편안함에 안주할 수도 있다는, 인생 선택의 문제로 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미약한 시작도 창대한 끝도 없는 편안한 선택을 정말 자기 스스로 한 것일까. 대략 생의 중간쯤에 서 있지만, 내 시소 위에 무엇이 올라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창대한 끝은 바라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내 시소가 끊임없이 움직이기를 바랄 뿐이다.
* 2004년~2009년 가톨릭 청년주보에 연재한 글입니다. 일부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