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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풍요로운 구속

56. 외국인

by 현덕. 2023. 9. 22.

2009.5

 

  환율이 한창 오르고, 일본사람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명동 거리엔 일본사람이 반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환율 특수가 아니더라도, 거리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시내 중심은 물론이고, 사는 곳 어디서든 종종 파란 눈이나 짙은 피부를 만나게 된다. 토요일이면 혜화동 일대는 그들만의 장터가 들어서고, 금요일 홍대 앞은 어느 나라인지 구분 못할 정도다. 불과 십여 년 전에는 ‘없던’ 풍경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마치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고통이 없었던 건 아니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부터, 잊을만하면 누군가 들고 나오는 순수한 혈통 운운. 외국인과 결혼하면 집안이 망할 듯 손사래 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국경보다 넘기 힘든 언어의 장벽,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문화의 차이를 조금씩 허물고 있다. 민족적 순수함을 목숨처럼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따지고 보면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외국인에 대한 학습이 부족하다.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민족, 인종이 뒤섞여 살아왔음에도 그와 관련된 대립과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충분한 노하우가 있을 것 같지만, 제도만으로는 되지 않는 무엇이 있다.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되어가는 시점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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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Asians and whites are facing each other'를 그려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그렸다.

 

  아직 우리나라는 외국인의 비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큰 탈은 없지만, 점점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되어가는 시점이 오고 있다. 지금이 외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는 시대도 아니고, 젊은이들의 해외여행 경험도 풍부해서 어쩌면 외국인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행과 유학이 다르듯, 삶의 일부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건 그렇게 만만치 않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대상은 ‘문화로서의 인간’이다. 그들이 우리가 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가 살아온 시간과 공간을 모두 접해야 하는, 어찌 보면 결혼과 다르지 않다.

 

 

* 2004년~2009년 가톨릭 청년주보에 연재한 글입니다.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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