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7
한동안 금연광고가 섬뜩하게 나오더니 요즘엔 금주광고가 눈에 띈다. 진작 그럴 것이지. 무리한 표현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술을 못 마시는 나로서는 두 손 들고 대환영이다. 음주운전의 위험성이라든가, 소위 필름이 끊겼을 때 돌변하는 사람들의 엄청난 실수도 문제가 되겠지만, 술 못하는 사람들이 억지로 마시는 술은 비흡연자가 마시는 담배 연기만큼 크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우리나라에서 술을 못한다는 건 곧 사회생활 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술을 잘 마시는, 아니 많이 마시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어 버렸다. 어쩌다 이런 문화가 생겨났나 싶다. 많은 중요한 일들이 술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사람과 친해지는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되기 때문에 그런다지만, 핑계다. 이건 곧 술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얘기 아닌가.
내가 술을 못 마신다는 걸 주변에 알리는데, 그리고 이들이 나에게 술을 권하지 않도록 하는데 10년 걸렸다. 술이 싫어서 대학 엠티를 가지 않았고, 성당에서 놀러 갈 때도 술을 권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아놓고 갈 정도였다. 그래도 결국 술잔이 돌아오긴 하지만. 이렇게 술을 강권하는 건, 마치 앞 못 보는 사람에게 눈 좀 뜨고 다니라는 꼴이다.
이렇게 뜬금없이 술 얘기를 하는 건, 그래도 근래 들어 술자리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죽도록’ 마시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강권하는 것도 많이 없어졌다. 한동안 금연바람이 불고, 많은 사람이 담배를 끊고 있던 어느 때, 친구가 나에게 그랬다. ‘넌 아직도 담배 피니?’ 나도 이런 식의 말을 술 권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
* 2004년~2009년 가톨릭 청년주보에 연재한 글입니다.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옛 > 풍요로운 구속' 카테고리의 다른 글
36. 관성의 법칙 (0) | 2023.09.18 |
---|---|
혼돈 시대 (0) | 2023.09.17 |
34. 눈빛 (0) | 2023.09.17 |
33. Second Life (0) | 2023.09.17 |
32. 판의 미로 (0) | 2023.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