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스럽게 담을 수 있겠지만, 보통 이 두 가지 여유 중 어느 한쪽만으로는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다. 시간을 벌기 위해 돈을 쓰거나,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쓴다. 살아가는 패턴에 따라 사용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고, 이들을 잘 활용하면 멋지게 산다는 소릴 듣기도 한다.
시간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하고 싶다던 수많은 일들은 사실 둘 다 풍족해도 하지 않는다. 그 두 가지가 풍족해지면, 하고 싶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부족해지기 시작하면 다시 머릿속은 하고 싶은 일들로 채워진다. 볼 일을 본 다음에야 휴지 생각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어릴 때 배운 지혜를 꺼내 쓸 만한 여유
시간과 돈이 주어지면 확실히 여유가 생기기는 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할 여유라도 가질 수 있게 두 가지 모두 주어지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둘을 묶어서 생각하면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는다(로또나 맞으면 모를까). 내게 약간의 시간이 생긴다면, 혹은 약간의 돈이 생긴다면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편이 조금 수월하다. 그렇게 하면 조금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대개 얼굴이 밝다.
그런데, 그 작은 여유를 부릴만한 맘속의 '여유'는 있나.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작은 것들이 모여야 큰 것이 되는 것인데, 품에 안기도 버거운 커다란 것을 한 손으로 쥐려는 게 사람의 욕심이라서, 내 손에 잡힐만한 작은 나뭇가지는 다 쳐내고 100년 된 열 아름나무를 어떻게든 쥐어보려고 팔 운동하고 있다. 시간이나 돈이나, 그 작은 여유가 없으면 부릴 수 없다. 그저, 어릴 때 배운 지혜를 꺼내 쓸 만한 여유라도 있으면 좋겠다.
* 2004년~2009년 가톨릭 청년주보에 연재한 글입니다.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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