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6
스포츠를 보는 듯하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에서, 우리 팀이 이기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응원하다가, 기적적으로 4강에 올라 온 국민이 기뻐하고, 즐기고, 그리고 끝났다. 그 뒤는 없다. K 리그도 사랑해 주세요, 축구 발전을 위해서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끝난다. 그 뒤도 없다. 4년 뒤 또 월드컵이 열리고, 응원하고, 지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흥분하고, 케이 리그를 사랑해 달라는 말도 빠지지 않겠지.
선거가 있었고, 끝났다. 그리고 그 뒤는 없다. 거봐라, 우리가 이겼지, 이게 민심이란 거다, 그랬겠지. 누군가는 책임지고 물러날 거고, 누구 어깨엔 힘 좀 들어갈 거고, 우리나라를 위해 힘쓰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해주세요, 그러겠지. 얼마 지나면 또 선거 있을 거고, 국민의 심판, 역사의 평가 또 나올 거고, 여전히 대한민국을 사랑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있겠지. 그래서, 언제 사랑할건데? 말은 그만하고 이제 사랑 좀 해주지. 아니, 나라 사랑은 안 해도 좋으니 안에 있는 사람끼리라도 좀 사랑하면 안될까? 그냥 그대로 사랑하게 해 줄 용의 있는데.
위인, 영웅, 여하간 훌륭하게 자란 누군가에겐 언제나 훌륭한 부모가 있었다. 국회의원이든 정당이든 아니면 대통령이든, 그들을 훌륭하게 키우려면 훌륭한 국민이 있어야 한다. 잘못한 것은 용서하되 거짓은 나무라야 하고, 잘했을 때 박수 쳐주고 자만할 때 쓴 소리를 해야 한다. 상과 벌의 기준은 그런 것이어야지,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이 기준이 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맞고 들어왔다고 혼내고 싸우고 들어왔다고 혼내는, 앞뒤 사정 보지 않는 체벌식 교육을 정치인들에게 시켜선 안 된다.
아이들은 그래도 부모님께 혼날까 두려워 거짓말을 잘 못한다. 거짓이 금방 들통 날 거라는 것을 경험에 의해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다르다. 거짓말을 서슴없이 할 뿐만 아니라, 거짓이 들통 나도 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 행동이 방자하기 그지없다. 국민의 눈이 매섭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 2004년~2009년 가톨릭 청년주보에 연재한 글입니다.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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