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
이맘때면 각 본당에서 성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성가대는 미사곡 연습을 하느라, 교사회는 성탄 잔치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또 여러 청년단체와 연합회도 성탄 맞이에 한창일 것이다. 트리를 장식하고 구유를 만들고, 미사 후 신자들과 함께 할 따뜻한 차를 준비하면서 잠시나마 가족과 같은 성당 분위기가 될 것을 생각하면, 손이 좀 얼어도 꼭 춥지는 않을 것이다. 이왕이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마음과 함께.
나도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 생활을 했고, 그때나 지금이나 성탄을 맞이하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세월이 제법 흘렀음에도 왜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탄 불변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제 와서 그때를 보고, 지금을 또 보고 있자면, 무언가 아쉬움이 마음 저 한구석에 웅크려진다. 달라졌어야 할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나는 왜 그렇게 성탄과 부활 준비에 시간을 보냈을까. 성탄을 위해서 투자했던 그 무수한 시간들은 다 어디로 흘러간 것일까. 그 모든 것 주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누군가 한마디 해 주면, 그것으로 모든 걸 보상받은 듯 나는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아기 예수님은 계시지 않았다. 성가 연습을 하는 동안에도, 트리를 장식하는 동안에도, 심지어 구유 경배를 하는 동안에도 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다. 마땅히 그 자리에 머무셔야 할 분은 저 한쪽으로 외면받고, 그 자리엔 내가 해야 할 책임만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일을 해야 했으며, 게다가 아주 훌륭히, 실수 없이 해야만 했다. 내가 온 신경을 그 행사에 쓰는 동안 그분은 어디 계셨을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매년, 자기만족적인 성탄을 준비하고 있었다.
춥다. 멀리서 성탄 종소리가 울리고 그 하늘에 별이 보인다. 비록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니어도, 지금 보이는 별은 내일 날이 맑다고 말한다. 맑으면 좋겠다.
* 2004년~2009년 가톨릭 청년주보에 연재한 글입니다.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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